번아웃을 방치하면 번아웃으로 끝나지 않는다

in SteemCoinPan •  4 months ago  (Edited)

번아웃을 방치하면 번아웃으로 끝나지 않는다

  1. 출처를 알 수 없는 불안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다. ‘읽지 않음’으로 표시된 메일들, 쉴 새 없이 껌뻑이는 메신저 알림, 저녁까지 꽉 찬 일정, 파티션 너머로 들려오는 누군가의 통화 소리와 움직임, 수첩에 빼곡히 적힌 할 일 목록들. 이 중 어느 하나가 나의 어딘가를 건드리면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극도의 불안감이 밀려왔다.

  2. 누군가가 지난주 업무에 대한 상사의 피드백을 듣는 중이었다. 언성 높은 몇 마디가 이어졌다. 그때부터 현기증이 나기 시작했고, 메일의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별안간 구토감이 밀려오며 눈앞이 새하얘졌다. 입을 틀어막고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변기를 붙잡고 앉아 여러 차례 웩- 웩- 소리를 냈다. 구토는 나오지 않았고 계속 헛구역질을 했다.

  3. 천식 환자처럼 거친 숨소리를 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목구멍에서부터 가슴까지 숨통이 조여오는 느낌이었다. 그대로 죽을 것 같았다. 극도의 공포감에 온몸이 떨리고 눈물이 쉴 새 없이 얼굴을 타고 흘렀다. 화장실 문을 열면 밖에서 펼쳐질 세상. 그 모든 것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30분가량을 화장실에서 떨다 동료에게 SOS를 청했다.

  4. 그날을 시작으로 약을 먹기 시작했다. 처방받은 약은 아침저녁으로 두 번 복용해야 했다. 제때 약을 먹는 동안은 공황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혹시라도 약을 깜빡한 날에는 어김없이 공황이 찾아왔다.

  5. 업무 도중 공황이 나타나면 ‘필요시’라고 적혀 있는 약을 먹고 휴식을 취해야 했다. 업무시간 중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었고, 결국 상사에게 공황장애임을 밝히고 양해를 구했다. 윗선에 보고가 되는 듯했지만 일을 줄이기 위해서는 별도리가 없었다.

  6. 한 달 정도 약을 먹고 일을 줄이니 불안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차츰 어쩌다 한 번 약을 먹지 않아도 공황발작이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약은 서서히 잊혀지고 나는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

  7. 하지만 그것은 공황장애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엄청난 실수였다. 의사와 상의 없이 약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 보니 내 증상은 더욱 나빠졌다. 불안 증상이 심해지자 자연스레 수면장애가 생겼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 겨우 잠들면 악몽을 꾸다 헐떡이며 깼다.

  8. 공황발작이 잦아지자 의사는 약을 더 늘렸다. 약을 먹으면 마취 상태와 비슷해졌다. 대부분의 정신과 약이 그렇듯 신경계에 작용하는 약들은 깨어 있으려는 뇌를 억지로 잠들게 했다. 약을 먹고 잠들면 15~20시간 가까이 깨어나지 못했다.

  9. 약을 먹으면 어둑해진 저녁이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그렇다고 약을 안 먹을 순 없었다. 잦은 공황발작, 수면장애, 악몽. 매일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삶에 대한 애정이 점점 식어갔다.

  10. 의사는 불안증과 공황장애를 오래 앓을수록 우울증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우울증 치료는 번아웃과는 다르게 접근하기 때문에 단순히 잘 쉬고 잘 먹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11. “지금 환자분은 우울증도 많이 진행된 상태예요. 공황도 문제지만 지금은 우울증을 잡는 게 더 시급합니다. 약물치료와 상담을 병행하는 게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일을 쉬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그러기 어렵더라도 최대한 고민해 보세요. 일을 획기적인 수준으로 줄여야 합니다.”

  12. 번아웃과 우울증이 온 이후 나는 삶이 덧없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몇 년 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더는 달릴 힘도 없었고, 앞도 보이지 않았다. 하루의 반을 약에 취해 잠들어 있다 일어나면 쓸모없는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종일 자다 어둠 속에서 눈을 뜨면 그 하루를 어떻게 견뎌야 할지 막막함에 눈물이 났다.

  13. 일반적으로 공황장애는 약을 먹으면 곧바로 호전되는 반응을 보인다. 그렇기에 다 나은 줄 알고 치료를 중단하는 예도 많고, 실제로 금방 좋아지는 사람도 있기에 공황장애로 자살하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우울증은 약으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치료 기간이 길어지고, 그 정도가 심할수록 치료가 점점 어려워진다. 수많은 사람이 정신과를 찾고도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기 부정과 절망을 끝낼 마지막 선택인 것이다.

<<리셋, 다시 나로 살고 싶은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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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진 번아웃 증후군이 저에겐 오지 않은 것 같은데.. 무기력하긴 하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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