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 한다

in SteemCoinPan •  2 months ago 

뭔가 가슴을 찌르고 온 몸을 전율하게 하는
멋진 카피 문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도 위 문장을 보면서 음미하는 순간
몸 전체를 찌릿하게 감도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전문] 김예슬 고려대 자퇴, 대학거부 선언문
http://www.nanum.com/site/act_manifesto/36564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김예슬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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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아니, 거부한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
그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과
좌절감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
그 20대의 한 가운데에서
다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지막 남은 믿음으로.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지만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는 25년 동안 경주마처럼 길고 긴 트랙을 질주해왔다.
우수한 경주마로, 함께 트랙을 질주하는
무수한 친구들을 제치고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달려가는 친구들 때문에 불안해하면서.
그렇게 소위 '명문대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더 거세게 나를 채찍질해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

지금 나는 멈춰 서서 이 경주 트랙을 바라보고 있다.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취업'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시켜 줄 자격증 꾸러미가 보인다.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우월하고
또 다른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무력하고,
그리하여 새로운 자격증을 향한 경쟁 질주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제서야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달리고 있는 곳이 끝이 없는 트랙임을.
앞서 간다 해도 영원히 초원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트랙임을.

이제 나의 적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 또한 나의 적이지만 나만의 적은 아닐 것이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임을 마주하고 있다.
대학은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가 되어 내 이마에 바코드를 새긴다.

국가는 다시 대학의 하청업체가 되어,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12년간 규격화된 인간제품을 만들어 올려 보낸다.
기업은 더 비싼 가격표를 가진 자만이 피라미드 위쪽에 접근할 수 있도록
온갖 새로운 자격증을 요구한다.
이 변화 빠른 시대에 10년을 채 써먹을 수 없어
낡아 버려지는 우리들은 또 대학원에, 유학에, 전문과정에 돌입한다.
고비용 저수익의 악순환은 영영 끝나지 않는다.
'세계를 무대로 너의 능력만큼 자유하리라'는
세계화, 민주화, 개인화의 넘치는 자유의 시대는 곧 자격증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졸업장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격증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학습된 두려움과 불안은 다시 우리를 그 앞에 무릎 꿇린다.

생각할 틈도, 돌아볼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또 다른 거짓 희망이 날아든다.
교육이 문제다, 대학이 문제다라고 말하는 생각 있는 이들조차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성공해서 세상을 바꾸는 '룰러'가 되어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나는 너를 응원한다”,
“너희의 권리를 주장해. 짱돌이라도 들고 나서!”
그리고 칼날처럼 덧붙여지는 한 줄,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대학大學'없는 대학에서,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이 진리인지 물을 수 없었다.
우정도 낭만도 사제간의 믿음도 찾을 수 없었다.
가장 순수한 시절 불의에 대한 저항도 꿈꿀 수 없었다.
아니, 이런 건 잊은 지 오래여도 좋다.
그런데 이 모두를 포기하고 바쳐 돌아온 결과는 정말 무엇이었는가.
우리들 20대는 끝없는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는
'적자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고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이대로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우리 젊음이 서글프다.

나는 대학과 기업과 국가, 그리고 대학에서 답을 찾으라는 그들의 큰 탓을 묻는다.
깊은 분노로.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유지자가 되었던 내 작은 탓을 묻는다.
깊은 슬픔으로.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을 용서받고,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만을 키우며 나를 값비싼 상품으로 가공해온
내가 체제를 떠받치고 있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이 시대에 가장 위악한 것 중에 하나가 졸업장 인생인 나, 나 자신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한번 다 꽃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 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게는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자유의 대가로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도전에 부딪힐 것이고 상처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삶의 목적인 삶 그 자체를 지금 바로 살기 위해
나는 탈주하고 저항하련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학비 마련을 위해 고된 노동을 하고 계신 부모님이 눈 앞을 가린다.
'죄송합니다, 이 때를 잃어버리면 평생 나를 찾지 못하고 살 것만 같습니다.'
많은 말들을 눈물로 삼키며 봄이 오는 하늘을 향해 깊고 크게 숨을 쉰다.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덕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균열은 시작되었다.
동시에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大學生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
이제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에 두고 나는 말한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2010년 3월 10일 김예슬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자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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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찬찬히 전체 문장을 음미해 보았습니다.
가슴 절절하게 그 아픔과 도전이 느껴집니다.

만약 예슬 양이 내 딸이었다면,
그 용기를 칭찬하고 꼭 껴안아 주었을 것입니다.

무려 10년이 넘게 흘러버린 세월...
예슬양이 피를 토하며 호소했던 대학의 모습은 과연 바뀌었을까요?
뭐 그때도 예상했겠지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다만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라는 복병으로 인해서
모든 대학들이 '위기'에 빠지게 된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한 줄어드는 인구로 인해서 벗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고 했던 예상이 맞아가고 있는 중이죠.

과연 예슬양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10년 전 SKY 자퇴한 3명…학벌 포기하고 어떻게 살고 있을까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0052515390885169

"여러분 앞에서 공개 이별을 선언합니다. 이별 상대는 우리 학교입니다." (2011년 연세대 4학년, 장혜영)
"사회에서의 학력·학벌 차별 문제 등 모든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싶고 저항하고 싶습니다." (2011년 서울대 3학년, 유윤종)

예슬양 말고도 그 다음해 학교를 떠는 분들이 2명 더 있습니다.

장혜영 씨는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이고
정의당 혁신위원장으로 추대되었습니다.
유윤종 씨는 '공현'이라는 필명으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대학생 아닌 '시민'의 눈으로 '촛불' 기록
'대학 거부 운동'의 시초를 만들었다 할 수 있는 김예슬 사무처장은 대학을 떠난 10년 동안 시민단체 '나눔문화'에서 활동해왔다. 2017년에는 시민들의 힘으로 정권 교체를 이룬 과정을 관찰하고 기록한 '촛불혁명'을 펴냈다.
김 사무처장은 자퇴 후에는 대학생 때부터 몸 담아온 비영리 사회운동 단체 나눔문화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7년에는 저서 '촛불혁명'을 저술해 시민들이 주축이 돼 정권 교체을 이끌어 낸 촛불집회를 기록했다.
나눔문화는 정부와 재벌의 지원, 언론 홍보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국제평화활동, 세월호 진상규명 운동, 탈핵 운동 등을 하는 단체다.

이들 3명의 삶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공교롭게도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의 소위 SKY라는
대한민국의 초 일류 대학을 거부하고 자퇴를 한 이후
그들의 삶은 '성공'이었을까요?

죽은 시인의 사회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048

3.jpg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아니 이 싸움도 결코 끝나지 않는 싸움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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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지막에 존경을 표하면 책상 위로 올라갔던 학생들
그럴 용기조차 낼 수 없어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는 학생들
우리의 미래가 이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더욱 더 '사랑'해야 하는 이유 입니다.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大學生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으로 태어난 김예슬 씨...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김예슬 씨가 더 강한 것임은 분명합니다.
한없는 응원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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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라는게 참..... 저도 얼렁뚱땅 대학원까지 나왔는데 석사 학위 따고 나니 석사가 우습게 보이더라구요.. 나도 들어갈 수 있는 곳인데... 다른 공부하는 사람까지 우습게 보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얻은 것이 있고... 들인 돈에 비해 얻은 것은 미미하겠지만.. 그래도 분명 무언가를 추구하는 동안 얻은 것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네요... 추구하는 것이 맹목적인 학위일 필요는 분명 없는 것 같아요.. 게다가 코로나 이후로 대학은 정말 그 의미를 잃어가는 것 같네요~~~~

대학도 많은 기득권들처럼 폐쇄적인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있는데, 균열을 일으킬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이미 깨지고 있는 중이죠 ^^

맞아요!!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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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라는 시스템안에서 규격화 되어가는 속이 분명 빛나지 못하고 사그라진 재능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참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거부 만이 답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저항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하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부디 승리해서 증명 해주시길 바라는 용기없는 1인의 바램...

저도 승리를 응원하는 1인입니다.

대학의 기원은 학문탐구가 아니라 고급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이었지요. 우리나라는 문과적 가치에 매몰되었지만요..잘난사람은 저럴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사람은 아둥바둥 생존하는 기술을 배워야 하니까요..삶이 그런거 아닐까요?

아둥바둥 생존... 슬프네요 ㅠㅠ

틀을 깨고 나올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드물죠. 나왔다는 자체로도 강한겁니다. 세속적인 성공이 뭐가 중요할까요?

그렇죠. 자체로 성공입니다. ^^

돌아보게 하는 메시지입니다.... 죽인 시인의 사회 다시 한 번 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성공의 잣대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예슬양을 포함한 저 분들은
성공한 삶일거라고 생각되네요ㅎㅎㅎ

저도 이미 성공하신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