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으로 말하는 고교 서열화 이야기 2

in zzan •  3 years ago 

첫인상

드디어 고교 서열화의 정점에 서있는 ㄱ고교(공학) 입학에 성공했습니다.


(사진설명 : 충남 서산 서일 중·고등학교 입학식. 사진출처 중도일보. 서일중·고등학교는 본문과 무관함)

입학이 확정된 이후 썼던 일기 등을 보니 나름 저는 고교생활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ㄱ고교 입시를 목표로 했던 학원에서는 친구들과 즐겁게 지냈습니다. 교실이데아 가사 중에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란 부분이 있었지만, 학원은 그런 경쟁심리보다는 '다같이 손잡고 ㄱ고교로 진학하자'는 심리를 부추겼습니다. ㄱ고교에서도 학원에서와 비슷하게 학교생활이 흘러가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그동안 겪지 못한 생활을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ㄱ고교는 제가 살던 ㄴ시 뿐만 아니라 인근 도시에서 모두 학생을 받았습니다. 같은 ㄴ시 출신이라면 중학교는 달랐어도 초등학교 친구들을 다시 만날 가능성도 있고, 평소 놀러 다니던 번화가 이야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학원가에서 오다가다 마주친 아이가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도시에서 온 친구들은 어떤 아이들일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습니다. 어떤 주제로 대화를 나눠야 할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남고, 여고를 나온 친구들은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들었습니다. 20년 전만 해도 공학보다는 남고, 여고가 대세였습니다. 저는 운좋게 중학교, 고등학교를 공학에서 다녔습니다만, ㄱ고교에서 만날 친구들 대부분은 남중 혹은 여중을 나온 친구들입니다. 남중을 다닌 녀석들은 더 거칠 것만 같고, 여중을 나온 친구들은 남자인 저와는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 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암튼 ㄱ고교 입학식을 마치고 교실에 앉았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20대 후반의 초임 영어교사(남자)였습니다. 초임이셔서 그런지(뒤늦게 알게 됐지만 전교조 소속) 학생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셨습니다. 미남에 운동을 상당히 한 체형이어서 남학생 여학생 모두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셨습니다.

다만 급우들은 저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긴장한 모습이었습니다. 다들 각자 중학교에서는 전교 10등 내외의 성적을 유지하며 모범생으로 불렸지만, 여기서는 모두 동등한 입장입니다. 같은 중학교를 나온 친구도 반에서 한두명에 불과합니다. 저도 같은 중학교를 나온 반 친구가 딱 한명이었습니다.

첫 0교시 시간. 몇몇 아이들은 옆반의 중학교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고, 어떤 아이들은 근처 자리에 앉은 친구들과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아무래도 공학 경험자가 적어서 그런지 남학생끼리 여학생끼리 따로 앉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몇몇 아이들은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기 시작합니다. 누군가는 토익 문제집을 꺼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수학의 정석 '실력편'을 꺼냅니다. 토익 문제집이나 정석을 풀면서 담임샘이 오길 기다리는 친구들의 모습이 곳곳에서 보입니다. 다들 선행학습은 하고 왔는지 고2 과정인 수1 정석을 푸는 녀석들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학교는 학교입니다. 처음 보는 사이이지만 1년을 같이 보낼 급우들입니다. 옆 친구가 먼저 말을 걸어주기만 하면 금세 친해질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옆도시인 ㄷ시에서 온 녀석이었습니다. 스프레이를 살짝 뿌린 올빽머리에 키는 180cm 정도 되어보이던 그 녀석은 남녀 학생 가리지 않고 먼저 인사를 하고 친하게 지내자고 말을 걸어왔습니다. 이 친구는 결국 1학년 반장을 맡기까지 합니다. 아무튼 그 친구 덕분에 저도 다른 친구들과 말을 틀 수 있었습니다. 중학교는 같이 나오지 않았지만 저와 같은 동네에 사는 아이도 알게 됐습니다.

저는 안경을 쓰지 않습니다만 안경 쓰는 학생이 다수였던 것도 인상깊은 점입니다. 제가 있던 반 총원은 47명이었는데, 안경을 쓴 학생이 40명 이상이었습니다. 지금도 친하게 지내는 한 친구는 남자 치고는 키가 작았는데, 두꺼운 검은 테 안경을 쓴 채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ㄷ시에서 온 친구였고, 내신과 연합고사 모두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는 소문이 돈 아이였습니다.(별명도 '꼬마장군'이었습니다) 한눈에 보고 저는 '진짜 범생이 중에 범생이는 저런 인간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일진이나 양아치 느낌이 나는 친구도 있긴 했습니다. 저와 같은 동네에 사는 녀석은 확 줄인 바지에 건들건들 교실을 돌아다닌게 영락없는 '양아치' 느낌이었습니다. 약간 친해졌다 싶으면 청소년 특유의 욕설을 섞어가며 대화를 했습니다. 나중에 친해지고 나니 양아치와는 거리가 먼 녀석이었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친형의 영향으로 헤비메탈에 미쳐서 괜히 건들거린 것이었습니다.

중학생 시절엔 한 반에 못해도 3~4명은 하루종일 담배 냄새를 달고 살았습니다. 쉬는시간 대변 칸에서 담배연기가 올라오는 일은 일상다반사였고, 하교길 학교 뒷편에서 각 반 '일진'들끼리 모여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매일 봤습니다. ㄱ고교에 오면서 신기했던 점은 남학생들 중 담배냄새를 달고 다니는 친구가 아예 없었다는 겁니다.

물론 ㄱ고교가 담배 청정지역이었단 말은 아닙니다. 학교생활이 계속되면서 ㄱ고교에도 소위 '노는 무리'(일진)가 있다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그 숫자는 많이 잡아야 10~15명 내외였고, 최소한 같은 학교 학생들을 때리거나 돈을 뺏는 일은 없었습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후배 학생을 때리는 일은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만.

대놓고 학교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학생도 없었고, 대부분은 자율학습시간을 이용해 학교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오거나, 학교 안에서 피울 경우엔 교사들이 퇴근한 저녁 시간에 운동장 구석이나 운동장 한켠의 쓰레기장에서 피우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처음 일주일 정도 학교생활을 하면서 중학교 때보다 아이들이 훨씬 착하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처음엔 토익과 정석에 코를 박고 있던 친구들도 일단 마음을 열고 나서는 허물없이 대해줬습니다. 쉬는 시간엔 반 친구들과 매점으로 달려가기도 하고, 학교 곳곳에는 붙어 있는 고교 동아리 홍보물을 보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중학생 때는 진학하려는 고등학교의 서열에 따라 어느정도 어울리는 무리가 나뉘어 있었고, 교사들도 성적에 따라 학생들을 차별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중3 때는 아예 성적에 따라 공부에 뜻이 있는 학생들을 앞에 앉히고, 실업계를 지망하는 학생들은 교실 뒷편에 몰아넣기도 했습니다.

ㄱ고교는 중학생 때 공부로 한가닥 했던 친구들이 모인 곳입니다. '꼬마장군'처럼 중학교 3년 내내 압도적인 성적을 보인 친구는 ㄱ고교 학생 중에서도 특별한 경우입니다. 대부분은 공부에 있어서는 고만고만한 실력을 갖고 있었기에 성적 때문에 누구랑은 친해져야겠다, 누구는 멀리해야겠다라고 재는 모습은 볼 수 없었습니다. 중학생 때는 '넌 공부만 잘하는 범생이니까 너랑 어울리기 싫다'라던지, '너랑 어울리는건 내 성적에 도움 안된다'는 상황을 많이 겪고 목격했던 것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시즌이 다가왔습니다.

경험으로 말하는 고교 서열화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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