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등ㆍ딸바보ㆍ우리들

in sct •  2 years ago 

오늘은 유플러스 쿠폰잔액이 남아서 <방구석 1열> 12회 자녀교육 관련 영화편을 봤다. 소개되었던 영화는 '4등'과 '우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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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등이라는 영화는 간단히 소개하자면 수영은 잘하는데 대회만 나가면 4등을 해서 메달을 따지 못하는 아이와 조금만 더 노력하면 메달을 따는데 그걸 못하는 자식때문에 분통터지는 엄마의 이야기다.

결국 화가 난 엄마는 잘 가르쳐준다는 코치를 찾아가 아이를 부탁한다. 그러나 그 코치는 때려서 가르치는 타입이었으니. 매의 효과인지는 몰라도 아이의 성적은 좋아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빠에게 매질을 당한 상처를 들키게 되고, 아이도 수영을 그만두겠다고 한다.

여기서 감동적인 부분은 마지막 쯤에 아이가 수영장에 들어가 경쟁은 잊고 놀이하듯 즐겁게 수영하는 장면이다. 나도 4살인 딸에게 발레수업을 듣게 하고 있다. (이렇게 적으니 꼭 내가 시킨거 같지만 100% 아빠의 주장으로 시작한 것이다. 나는 분명 안 어울린다고 누차 말했건만...)

아이는 토요일 발레에 가서 초반에는 이쁜 치마를 입으니 좋은지 연신 즐거워했다. 아직 발뒤꿈치를 들지도 않고, 선생님이 하는 포즈들을 웃으면서 어설프게 따라하는 수준. 그런데 바로 옆에 능숙하게 발레 포즈를 취하는 또래 여자아이가 항상 같이 수업을 듣는 것이 계속 눈이 보인다.

우리 아이는 이름도 찡답게 연신 찡찡대고 짜증내면서 지멋대로 뛰어다니는데, 그 아이는 아빠 곁에 앉아 조곤조곤 말하는 모습이 너무 예뻐보였다. 요즘은 아줌마가 되고 오지랖이 넓어져 버린 탓에, 근질근질한 입을 참지 못하고 결국 지난주 몇 달간 궁금했던 그 아이의 개월수를 물어보고 말았다.

우리아이와는 4개월 정도 차이가 난다고 하는데, 행동도 말투도 꼭 어른같았다. 어떻게 아이가 조용히 앉아서 말을 걸수 있는 걸까. 내 딸은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한시도 가만있지 않는데. 요즘은 눈도 안 마주치고 내가 잡으려하면 술래잡기를 하는줄 알고 부리나케 도망간다. 뭘 물어봐도 영혼없는 "네"만 연발하고, 구체적인 대답을 못들은지 오래되었다. 그것도 이것저것 내가 파고들어 연신 캐물어봐야 아이의 마음을 알고는 했으니.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저번주. 기어이 나와 남편의 화가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할로윈 데이라고 선생님이 마녀 모자와 호박 모양 바구니를 주고 한명씩 발레포즈를 취하도록 했는데, 다른 아이들은 모두 잠자코 있는데 내 딸은 단 1초도 한 자세를 취하지 않았고, 심지어 발뒤꿈치도 아닌 발가락쪽을 들고 뒤꿈치로 찍으며 걸어다녔다.

이미 화가 폭발한 남편의 얼굴은 벌게졌고, 나도 화가 났다가 어느순간 그냥 해탈의 웃음만 연신 웃어대고 있었다. 정말 발레는 아닌데... 이 이야기를 계속 중얼거린거 같다. 그런데 남편은 기어이 다음 학기 수업도 결재할꺼라고 으름장을 놨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수업을 계속 들어야 아이가 집중력도 생기고 따라할꺼라나 뭐라나 모르겠다. 또 맨바닥에 돈만 버리는 꼴 같은데 말이다. 워낙에 딸바보라서 엄마인 내 의견은 바위에 계란치기다.

내가 아는 내딸은 거의 망나니(....) ...휴 모르겠다. 남편은 딸에게 도대체 어떤 모습을 바라는 걸까. 딸바보들의 큰망상을 나는 모르겠지만, 우리집 딸바보는 자신이 이발하는 날도 꼭 딸아이와 함께 미용실을 가고, 딸바보는 카페를 가더라도 딸래미가 먹을 블루베리 스무디를 사온다. 나에게는 딸과 나눠먹으라고 하고, 지나가다가 솜사탕만 보면 지나치질 못하고 매번 손에 들려준다. 그래봤자 한 두입 먹고 다 버리는데... 이번에도 내가 아이에게 집중력을 키워야 한다고 했는데 그건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과부하(???)가 온거 같으니 딸을 위해 힐링여행을 떠나자고 한다.

대충 장소를 물색하는걸 보니 뭐 거의 키즈를 위한, 키즈에 의한, 키즈만을 뭐 그런 장소들이다. 솔직히 글을 적다보니 화가 치미는데 내 생일 11월 1일에 딸 치과 예약하고 딸 유치원 상담을 간다고 한다. 혼자 가라고 하니 그건 또 싫대. 우리 가족은 모두 일심동체로 움직인다. 차라리 아들 둘을 낳을껄 그랬다. 그냥 공 하나 던져주고 저기 아파트 앞 축구터에 가서 열심히 뛰어놀라고.

최근에는 아빠도 딸아이의 머리를 섬세하게 묶을줄 알아야 한다며 그 ... 개털손으로. 휴. 묶은거 거의 뭐 허수아비로 만들어놨더구만 도대체 무슨!!!! 조금더 적어보자면 남편은 점점 딸에게 미쳐가고 있는거 같다. 어제만 해도 마트가서 딸래미 먹을것만 절반 이상을 샀다. 당연한 거긴 한데 내가 먹는 파프리카 5천원은 아깝다더니 딸래미 좋아하는 핑크퐁 음료를 20개나 샀다. 하루 2개씩? 먹으라는 배려인가.

요즘 유치원 설명회 시즌인데 거짓말 안 보태고 인근에 모든 유치원을 다 갈 기세다. 주말만 되면 유치원 설명회. 대충 생각하는 몇 곳만 가면 되는데 도대체 몇군데나 가는거야. 몇 번은 짜증나서 혼자 가라고 했더니 삐져가지고... 혼자서 가서는 노트에 꼼꼼하게 뭘 또 적어왔는지. 엑셀로 도표 만들어서 비교하고 있다. 퇴근하면 내 손에 A4용지 들려주며 빼곡히 뭐가 가득적혀있다. 유치원 비교라나. 금액, 교육, 식사, 환경 뭐 거의 감사단 수준인가.

이번주 다음주 다담주 계속 설명회다. 심지어 평일에도 참석한다고 회사를 짼다. 그런데 놀라운건 거기 전부 아줌마 뿐이다. 거의 95%는 아줌마이고 나머지 5%가 남자인데 특히 1열 앞자리에 앉아서 끊임없이 질문공세를 해대는 사람이 내 남편이다.

요 며칠전에는 7세까지 하는 가정 어린이집 설명회를 갔는데 질문을 연달아 5번도 넘게 해서 내가 "제발 우리 추적 60분 아니잖아" 하며 뒷자리에서 넥슬라이스를 갈겼다. 탁자는 왜 저렇게 해놨냐, 가위가 너무 날카로운거 아닌가, 비상 대피로는 어딘지도 묻고, 여기 식판 세척해주는 업체는 어딘지 물어본다. 일부러 원장들 당황하는걸 즐기는거 같아서, 며칠전 새벽2시 쯤에 거실로 나왔는데 또 유치원 글을 찾아보고 있어서 물어봤다.

너 사실 즐기고 있지??? 유치원 다니면서 원장들 찔러보는거에 희열 느끼는거 아냐? 했더니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요즘은 허를 찌르는(?) 질문공세로 원장이 땀흘리는게 승리한거(?) 같다는 도취감을 준다며 상기된 얼굴을 했다. 이러다 우리 딸 유치원 블랙리스트에 오르는거 아닌가 모르겠다.

어젯밤은 유치원 홈페이지와 카페에 들어가서 사진들을 열심히 정독하고 있었다. 클릭하면 회원이 아니라 볼수 없지만 아주 작은 미리보기 사진으로 유치원의 분위기(?)를 짐작하며 셜록 홈즈처럼 나한테 자신의 추리를 막 열거한다.

그러면 뭐하겠는가. 너무나도 많은 정보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초반에 자신이 제외했던 유치원들이 찾고 찾다보니 또 좋은 점들이 보여서 연신 당황하는 모습이다. 그렇지. 모든 것이 완벽한 유치원은 없는거야. 어딘가가 안 좋으면 어딘가는 좋고 뭐 그렇고 그런거 아니겠써.

영어를 하루에 2번, 주 5일하는 유치원으로 보내고 싶다고 하는 남편에게 제발 애 잡지 마라고 우리 아이 성향은 진득하게 앉아서 뭘 외우고 그러는 타입이 아니라고 확실히 말해뒀다. 괜히 입학했다가 혼자서 진도 못따라가고 자존감만 팍 식어서 나오면 좋겠냐고 말이다.

그러나 한 두번 어린이집 원장과 담임이 "우리 찡은 너무 똑똑한거 같아요 ^^ 호호호" 그 립서비스를 듣고 영재(?)라고 착각하는 거 같아서 확실히 못 박은적이 많다. 우리 아이는 그렇게 똑똑하지는 않다고. 원래 선생님들은 좋게 말하는게 습관화 된 분들이라서 조금만 뭘 더 알아도 똑똑하다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으니 착각하지 말라고.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마다 남편이 나에게 너무 냉정한 엄마라고 한다. 어떻게 자식에게 1도 기대를 하지 않냐고.

원래가 인풋이 훌륭해야 아웃풋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담임이 몇 번 내 딸에게 학습지나 교재같은거 시작해보라며 허파에 바람을 주입하는데. 노노. 안되지. 한 반에 고작7명 있는 반에서 조금 더 아는 아이라고 뭔가 믿고 시작하다가는 큰코 다칠 꺼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나름대로 이제 유치원생이 될테니 큰 큰 아주 큰 책상을 하나 사주었다. 나 답지 않게 나름대로 아이에게 큰 투자를 한 셈이다. 그냥 여기 앉아서 책에 그림이라도 5분동안 봐주면 얼마나 좋아 이런 간절한 엄마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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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보니 너무 격분했다. 다시 <방구석 1열>로 돌아와서, 두번째 영화 소개는 '우리들'이라는 영화였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겪을 수 있는 왕따 이야기와 에피소드인데 너무 공감이 갔다. 이 눈치. 저 눈치. 이리저리 눈치보며 들어간 집단에서 또 이 눈치. 저 눈치. 그러다가 단짝이 생겼는데 그 아이와 싸움이라도 나는 날에는 서로의 비밀이 온 세상에 다 까발려지는 날이다. 그러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겠지.

나도 단짝이 생기기 전까지는 혼자 다녔던 시기가 있어서 주인공이 조심조심 행동하는 것이 너무 슬프면서도 공감이 갔다. 흑흑. 그렇게 모든 시련들을 이겨내고 한명의 성인이 되는 거겠지? 부모의 역활은 그때쯤이 되면 뒤에서 지켜봐주는 거겠지? 이 생각. 저 생각. 푸념 하나. 푸념 둘. 푸념 셋. 푸념 넷.

오늘도 쓸데없이 긴 글이었다.
그래도 대나무 숲에 이런 불만을 찡찡댔으니 당분간은 딸바보의 행동을 너그러이 봐줘야겠다. 4살이면 얼마나 이쁘겠어. 귀찮은 엄마와 꼼꼼한 아빠를 둔 내 딸 찡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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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 💙 한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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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쨘

길게 찡에 대해 썼으나
이 글의 핵심은

내 생일 11월 1일에

이거죠! ㅋㅋㅋㅋ

정말 나를 너무 잘 알아ㅋㅋㅋ

수고~!!

뭐하고사나요 골드뉨